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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 6주 되네요

by 오, 자네 왔는가 2025. 5.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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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 6주 되셌네요

 

임신여부를 확실히 알아보기 위해 남편과 함께 모여성 클리닉(불임 유산 전문 클리닉)을 찾아갔다.

의사는 놀라는 눈치였다.

 

“임신 되셨는데요?

 

아주 좋은 위치에 단단하게 착상이 되었습니다. 아주 좋은데요. 6주 되셨네요”

이 클리닉은 예전에 한번 찾은 적이 있었다.

당시 이 곳 의사는 자궁에 물혹이 7-8개 나 있는데 크기가 어른 주먹만 한 것들을 비롯, 크고 작은 덩어리들이 자궁안에 가득 들어 있으니 어렵겠지만, 한번 노력해보자고 말했던 것이다.

 

  그 전에는 국내 유명 여성 전문병원에 다녔는데 기백만원의 비용을 들여 수십가지 검사를 하고 난 후 물혹을 수술하자며 다짜고짜 수술 날짜를 잡았다. 나는 단호하게 거부하고 병원을 나왔다. 그리고 찾은 병원이 이곳인데 이 병원 의사선생님은 괜찮은 분이었다. 수술 같은 거 하자고 하지 않았고 한번 같이 노력 해보자고 했다.

하지만 나는 솔직히 의사선생님과 함께 ‘한번 노력해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그 후 일절 병원을 찾지 않았다. 그리고 근 1여년 만에, 뭘 어찌했는지는 모르지만 아주 좋은 위치에 단단하게 아이가 착상된 상태로, 내가 나타난 것이다.

 

나중에 아이를 낳은 후 의사 말이 내가 임신해서 나타났을 때 자기도 정말 깜짝 놀랐다고, 기절하는 줄 알았다고 술회했다. 그만큼 당시 나의 자궁 상태는 안 좋았고 게다가 나이가 몇인가?

처음에는 1주일에 한번 그 후에는 2-3주에 한번, 나중엔 한 달에 한번 병원에 나오라고 했다. 나의 경우 임신도 중요하지만 습관성 유산이 문제가 되기 때문에 향후 유산을 막기 위해 면역글로불린 주사같은 걸 권유했다. 그 외에 또 다른 것도 권했는데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런데 그 비용이 만만치가 않았다. 1회주사 비용이 60만원 정도 였던것 같은데 한달에 2회 투여 하면 한달에 1백만원 이상 들어간다. 비용도 비용이 지만 인위적인 건 일체 하지 않기로 했다. 그냥 자신이 있었다.

 

 

  나는 믿는 것이 있지 않은가? 내가 믿는 건 산! 그거면 될 것 같았다. 다른 건 필요 없었다. 내가 원치 않는다고 하자 의사는 더 이상 권하지 않았다. 1년 전 도무지 불가능할 것 같은 몸 상태였는데 그 사이 무엇을 어찌했는지 임신이, 그것도 좋은 위치에 단단히 착상된 상태로 나타났으므로, 의사는 나의 모든 결정을 전적으로 믿어주는 듯했다.

나는 의사선생님의 그런 태도가 감사했고 고마웠다. 부득불 각종 고가의 치료를 강권한다면 난감했을 텐데 말이다.

 

  그나저나 일하기로 한 신문사에 빨리 전화를 해야 했다. 뭐라고 말할까?

주책스럽게 이 나이에 임신했다고 말 하는 건 쑥스러웠다. 뭐라고 적당히 둘러댔더니 내가 혹 다른 곳에서 일하려고 거짓말하는 건가 하는 의혹을 갖는듯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아무리 일을 하고 싶지만 임신인 걸. 이제부터 모든 계획은 다시 세워야 한다.

나의 백수생활은 계속되었다. 임신인 걸 알고부터 나는 더욱 열심히 산에 다녔다. 주변 사람들은 내가 습관성 유산이라는 사실을 들어 움직이지 말고 집에 가만히 있으라고 권유했지만 나는 확신이 있었다. 계속 산에 가야 한다는.... 그러면 반드시 아이를 낳을 거라는 걸...

 

다음날부터 나는 다시 맨발로 2시간 가량 약수터에 갔다. 물론 조심조심 천천히. 풀냄새 흙냄새를 맡으며 새소리를 들으며 행복한 마음으로 느리게 느리게 걸었다.

고요한 산길은 한여름도 바람이 불어 시원했고 사람들이 자주 다니는 곳이라 음습하지 않았다. 어찌나 산에 가는 것이 좋던지 비오는 날에도 산에 갔고 천둥치고 태풍이 오는 데도 모처럼 쉬는 날 잠자는 남편을 강제로 끌다시피해서 산에 올라갔다. 그런데 갑자기 태풍이 심해져 바람이 세차게 불고 나뭇가지가 어찌나 심하게 요동치는지 하마터면 뿌리가 뽑힐 지경이었다. 그리고 비가 내리쳤다. 그런데도 나는 산에 있고 싶었다.

 

  매일 산에 가는 것이 얼마나 좋은지 몸소 체험한 때문이리라. 임신을 유지하고 습관성 유산을 막기 위해서도 하루도 산에 가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중독 같았다. 그리고 어떤 날, 막 비가 그친 오후 향기로운 풀냄새와 산 허리까지 가득 안개가 낀 산길을 올라가다 보면 가슴이 턱 막혔다. 너무도 세상이 아름답고 내 마음이 알 수없는 감흥으로 가득했다. 문득 어느 아득한 꿈의 나라로 이사를 해 온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였다.

당시 우리 부부는 경기도 광명에 살았는데 내가 다니는 약수터가 있는 산 이름이 도덕산이었다. 우리아이는 도덕산의 정기를 받고 태어날 아이라고 남편에게 자랑하기도 했다.

 

  지금도 그 곳을 떠올리면 아련한 그리움이 피어오른다. 혼자 한발 한발 산을 내딛을 때면 세상의 모든 시름이 사라지고 머리가 맑아진다.

그렇게 하루하루 산을 오르다 보니 어느덧 배가 천천히 불러왔다,

유산 위험기인 5개월을 넘기고 나자 컨디션은 더 좋아졌다. 하지만 창백한 얼굴과 ‘뚱뚱한’ 한 몸으로 초로의 늙수그레한 여자가 몹시 힘들게 매일 산길을 오르니 종종 오해를 받았다.

 

  어떤 착하게 생긴 남자 분이 나에게 다가 오더니 ‘마음을 강건히 하고 열심히 운동하시면 어떤 병도 물리 칠 수 있습니다. 희망을 잃지 마세요’ 한다. 그 분은 시내 버스를 운전하는데 건강이 안 좋아서 이틀에 한번 쉬는 날에는 산을 찾는다고 했다. 산에 다니고부터 위장병을 비롯해 자신의 만성질환이 모두 깨끗이 나았다는 자랑이었다. 그래서 산이 미치도록 좋아서 쉬는 날은 새벽부터 도시락 싸서 하루 종일 산에서 산다고 한다. 그러면서 산에 대한 예찬을 한참 하더니 나에게 산에서는 어떤 병마도 물리칠 수 있으니 포기하기 말고 열심히 다니라고 격려했다.

 

  뒤틀리고 배배 꼬인 인생을 술로 탕진하며 시간을 보내다가 수술(병이 기억나지 않는다)을 한 후 부인도 집을 나가는 등 무척 힘든 시기가 있었다고 했다. 마음을 고쳐먹고 일자리를 찾은 후에는 건강이 완전히 망가진 상태였단다. 그래서 돈 안들이고 건강해지는 방법을 찾던 중 산에 오르게 됐는데 한달 만에 큰 변화를 겪었다며 건강을 자랑했다. 참 공손하고 예의 바른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슬쩍 쳐다보니 그분의 표정이 정말 웃겼다. 내가 참 안됐다는 표정이 역역했고 나에게 용기를 주는데 필요한 말을 열심히 찾는 듯했다. 그리고는 반드시 좋은 날이 있을 거라고 자기처럼 ‘옛날 이야기’ 할 때가 있을 거라고 산의 ‘신비한 효험’을 계속 설명하는 것이었다.

 

  그 분의 요점은 그러니까 ‘절대 포기하지 말고 산에 다니면 어떤 병도 물리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속으로 막 웃음이 났다. 하지만 ’ 아저씨 저 아픈 거 아니거든요. 저 임신했거든요.‘ 라는 말을 할 수는 없었다. 무엇보다 쑥스러웠다. 마흔이 넘은 아줌마가 주책이야, 하는 생각이 들었다. 또 그분이 무안해 하는 것이 싫었다. 그래서 그냥 웃으며 고개를 끄덕여 주었더니 이 분은 자기 말에 확신이 선 듯 신이 나서 자신이 앞으로 살아갈 계획까지 이야기 해주었다. 나는 계속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그 후 가을이 되면서 내 배는 부풀어 올랐고 나는 숨을 몰아쉬면서 힘겨워했는데 그 분은 나를 만날 때 마다 걱정스런 얼굴로 말 했다.

‘좋아질 겁니다’

 

  열심히 산에 오는데도 눈에 띄게 ‘나의 상태’가 호전되지 않는 것이 믿기지 않는 듯 걱정되는 눈치였다. 어느 날 또 우연히 이 분을 만났는데 조심스럽게 ‘운동 양을 늘려 보세요’ 한다. 그분은 하루 종일 산에서 살았지만 나는 산을 한 바퀴 돌고는 곧장 내려가니까 아쉬운 모양이었다. 나도 갈수록 어색해져서 고개만 끄덕였다. 어쨌거나 그는 만날 때 마다 공손하게 나에게 좋아질 거라는 ‘희망’을 주었다. 어떤 날은 아이들을 데려 오기도 하고 어떤 날은 친구들과 함께 오기도 했다.

 

  가을이 깊어지고 겨울이 되면서 내 배는 남산만큼 부풀어 올랐는데 이 아저씨, 그제서 감을 잡은 모양이었다, 어느 날 산에서 나를 보고는 슬슬 피하더니 얼른 다른 길로 가버렸다. 너무 미안했다.. 진작 ‘저 사실은 임신했거든요‘ 했어야 했는데...

나는 임신 9개월이 될 때까지 한 겨울에 계속 산에 다녔다. 야트막한 동네 산이니 넘어지는 것만 조심하면 문제없어 보였다. 발이 시릴 정도가 되면서 부터는 신발을 신고 다녔다.

 

  임신 초기 어느 날은 산에 갔을 때 교회에 다니는 아주머니가 끈질기게 따라붙었다. 교회에 나오면 건강해질 수 있다고 했다. 내 얼굴이 설마 임신 할 새댁으로는 보이지 않는 모양이었다. 며칠을 산의 입구에 앉아서 나를 기다렸다가는 교회에 가자고 했다.

 확실히, 내가 임신일거라는 눈치는 채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하지만 일일이 사실을 말 하고 싶지도 않아서 잠자코 있었던 것이 그만 아저씨를 난처하게 만든 듯했다. 참 좋은 분이었는데 말이다. 자신이 경험한 ‘놀라운 변화’를 알려주고 용기를 주려고 무척 노력했던 것이다.

10개월째 접어들면서 이젠 언제 아이가 나올지 모르니 산은 무리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 후부터 아이 낳을 때까지는 광명시청의 운동장을 하루 다섯 바퀴 정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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