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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지독한 냄새 좀 어떻게 해줘요!

by 오, 자네 왔는가 2025. 5.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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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자 위에 오렌지 한 개

양탄자 위에 너의 옷

내 침대 속에 너

지금의 부드러운 현재

밤의 신선함

내 삶의 따뜻함

    -J. 프레베르<알리칸테>

 

 

 

이 지독한 냄새 좀 어떻게 해줘요!

“으악! 김치찌개 냄새! 이게 뭐야?”

  나는 코를 감싸쥐고 화장실로 달려간다. 멀건 액체가 소량 나올 뿐 나오는 것도 없는데 속이 뒤틀린다.

저녁밥을 짓던 남편은 멍해진 낯빛으로 서 있다.

“어, 이거 좀 이상하네” 당황스런 표정이 역력하다.

 

 그 시기 남편은 종종 스스로 밥을 해먹었는데, 퇴근 후 냉장고에서 김치를 꺼내 김치찌개를 한 모양이었다.

안방으로 스며드는 김치찌개 냄새를 맡지 않으려고 이불을 뒤집어 쓰고 코를 틀어막았다.

 하지만, 숨을 들여 마시면 여지없이 독한 김치찌개 냄새가 몰려 들었다.

 

 결국 옷을 주섬주섬 입고 집을 나와 한참 동안 거리를 걸었다. 땅거미가 지는 늦은 저녁, 광명 전철역 일대에 흘러 다니는 냄새 또한 만만치 않았다.

 

 아, 그동안 이 지독한 냄새를 아무 느낌 없이 지나치다니!

음식점 안에 사람들이 원망스러워지기까지 했다.

헛구역질을 하다가 급기야 누런 액체를 토했는데, 사람들이 이상한 시선으로 바라 보고 있다.

“초저녁인데 혼자 술을 마신 아줌마라니!” 하는 눈초리로 쳐다 보는 사람들을 보니 슬몃 웃음이 났다.

 

  대단한 비밀을 혼자 지니고 있는 자의 자부심 같은 것.

다른 한편으로는 42살에 임신이라니! 좀 심하긴 하지!

내가 나이보다 젊어 보이면 좋으련만 안타깝게도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내 나이보다 다섯 살은 많게 본다.

아무튼 늦은 임신과 건강치 못한 몸 상태 때문에 입덧이 별나게 심한 것이라고 스스로 위안했지만 그 고통만은 지금도 생생하다.

 

 누구나 겪는 일이겠지만 나 역시 임신 초기에는 입덧이 심했다.

인터넷이나 관련 서적에 소개된 입덧을 경감시키는 음식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

참을 수 없이 힘이 들었다.

산에 가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하루 종일 누워 있어야 할 정도로 구역감과 구토가 심했고 집안에서 음식냄새가 나면 여지없이 멀건 액체를 토하곤 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입덧 기간 동안, 아니 임신기간 내내 나는 우거지 된장국, 과일, 미숫가루, 생선초밥 등 비교적 몸에 좋은 음식만 당겼다는 것이다. 인스턴트 음식이나 패스트푸드, 육류 등은 입에 댈 수도 없었다.

 

  임신 초기에 시작된 입덧은 5-6개월까지 계속됐는데 구토 후 미숫가루를 한 대접 타서 마시고 누워있거나, 우거지 된장국에 밥을 조금 말아서 먹으면 속이 편해지곤 했다. 간혹 아이스크림을 우유에 섞어서 마시기도 했다.

책에 나와 있는 바나나나 비스켓 같은 입덧에 좋다는 음식은 먹는 즉시 토해버렸다.

 

  내가 생각해도 지독한 건 이 심한 입덧의 기간에도 나는 죽기 살기로 소량이지만 물을 마셨다는 것이다. 마시고 나면 다 토해버리기 일쑤였지만 그래도 가능하다 싶으면 얼른 물을 마시곤 했다. 그렇게 힘든 시간을 지나 임신 7개월에 접어들자 입덧이 잦아들었다.

 

  입덧의 정도가 경감 되자 평소 먹지 않던 음식들이 떠올랐다. 돼지고기 편육, 삶은 조개, 킹크랩, 소고기무국 등이 무척 맛있던 기억이 난다. 임신 초기 입덧이 심했을 때는 열무김치와 호박죽이 먹고 싶었는데 막상 열무김치를 보자 역한 냄새에 헛구역질을 했다. 먹고 싶은 것이 있을까해서 나가보면 임신 7개월이 되어서도 재래시장의 비릿한 냄새에 속이 뒤집혔다. 그래도 부침개나 장어초밥, 와플 등을 맛있게 먹기도 했다.

 

  임신이 된 후에는 특별히 음식에 신경을 쓰진 않았다. 뭐든 먹고 싶은 것 당기는 걸 먹었고 구토를 했고 그런 반복적인 시간을 거쳐 조금씩 적응이 되어갔다. 단 한가지 산에 올라가면 입덧이 잦아들었다. 그 여름의 광명 도덕산을 혼자 맨발로 걸어 갈 때면 거짓말처럼 입덧증세가 사라졌다. 숲의 공기가 그렇게 상쾌할 수 없었다.

 

  산에서 내려와 동네로 접어들면 여러 집들에서 퍼져 나오는 음식냄새에 다시 헛구역질을 했다. 이상한 일이네. 예전엔 어느 집에서 새어 나오는 삼겹살 굽는 냄새, 고등어 조림, 콩나물국 냄새, 밥 냄새가 참 좋았는데 그 모든 냄새가 이렇게 역겹다니! 역시 임신이란 묘한 것이야

 

  중얼거리며, 골목의 한적한 곳에 자리를 펴고 삼겹살을 구워 소주랑 상추를 싸서 입이 터지게 먹는 사람들을 보면 손으로 코를 틀어막는다. 급히 골목을 빠져 나온 후에 혼자서 웃는다. 예전엔 저 삼겹살 정말 좋아했는데 삼겹살에 마늘 고추 파채 된장 넣고 한입 먹으면 얼마나 맛있는데! 역시 임신은 묘한 것이구나!

 

  임신 기간 중에는 그저 당기는 것, 먹고 싶은 것을 먹을 수 밖에 없지 않을까 싶다. 인스턴트 음식 등을 배제하고 몸에 좋은 음식을 먹으면 더 없이 좋겠지만 입덧이 너무 심한 경우에는 뭐든 먹을 수만 다면 고마울 뿐이었다.

 

  물론 임신 중이라도 입덧이 심하지 않다면 과일과 야채, 잡곡밥 된장찌개 등 건강에 좋은 음식을 먹는다면 더없이 좋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임신 내내 감사하는 마음이었다. 된장국과 미숫가루, 과일 등을 먹을 수 있었으니 말이다.

 

  특히, 습관성 유산인 경우는 임신초기는 몸을 움직이지 말라는 것이 정설처럼 알려져 있지만 나는 개의치 않았다. 나로선 무작정 몸을 싸매고 드러누워 있는 건 임신의 유지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확신이 있었다. 그것은 몸이 내게 알려 주는 신호로 알 수 있었다.

  느린 걸음으로 평화로운 마음으로 산책 후 집에 돌아오면 몸은 가볍고 입덧도 한층 가라앉았다. 임신초기의 이런 운동이 오히려 임신상태를 더욱 단단히 자리잡게 (착상)한 것이 아닐까 싶다.

 

주위의 조언이나 병원의 말을 잘 따르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 몸이 내게 알려주는 신호보다 정확한 것이 있을까? 몸이 한결 편안해지고 마음이 충만해진 느낌, 뱃속의 아이가 행복해 하는 느낌, 아기집이 더욱 단단해진 느낌, 그건 몸이 전해주는 놀라운 신호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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