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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자네 왔는가? 차나 한잔 하고 가게 -조주종심 선사

by 오, 자네 왔는가 2025. 5.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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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선종의 대표적인 고승  조주종심(趙州從諗, Zhaozhou Congshen 778~897) 선사와 관련된 유명한 일화들을  소개합니다.

1. 조주 종심 선사와 선종의 지혜

 

중국 선종(禪宗)의 역사 속에서 조주 종심(趙州從諗, Zhaozhou Congshen) 선사는 독특한 인격과 뛰어난 선문답으로 오랜 세월에 걸쳐 존경받는 인물이다. 그는 당나라 말기 혼란한 시대에 활약한 인물로, 당나라의 선종이 절정에 이르던 시기, 즉 ‘오가칠종(五家七宗)’이 형성되기 전후의 중요한 시기에 활동한 고승이다.

조주 선사는 어려서부터 불교에 귀의하였고, 18세에 출가하였다. 이후 20세 무렵 명고(明果) 선사에게 가르침을 받고, 30세에 깨달음을 얻었다고 전해진다. 그는 당대의 대선사였던 남전 보원(南泉普願)의 제자였으며, 그의 가르침을 받으며 깊은 깨달음을 얻었다. 특히 조주 선사의 가르침은 형식이나 이론보다도 실천과 직관을 중시하며, 일상의 언어와 행동을 통해 진리를 드러내는 것으로 유명하다.

 

2. "개에게도 불성이 있습니까?" — 무(無)자의 공안

  조주 선사를 이야기할 때 빠질 수 없는 것이 바로 유명한 선문답, 즉 ‘무자(無字) 공안’이다. 이는 선종에서 가장 자주 언급되는 공안 중 하나로, 일본의 임제종이나 조동종 선문에서도 기본이 되는 수련 공안이다.

 

 

어느 날, 한 수행자가 조주 선사에게 물었다.

  “개에게도 불성이 있습니까?”

   “無.”

 

  이 대답은 단순한 부정이 아니라, 언어와 논리를 넘어선 수행자의 의심마저 끊어내려는 방편이다. 여기서 "무(無)"는 존재의 유무를 단순히 가리는 것이 아니라, 집착과 분별심을 깨뜨리기 위한 화두로 제시된 것이다. 수행자는 이 한 글자의 화두를 붙잡고 끊임없이 의심하고 정진함으로써, 결국 자아의 분별을 끊고 진여자성을 체득하게 된다.

 

  불교 교리적으로는 일체중생, 곧 모든 존재에게 불성이 있다는 것이 정설입니다. 따라서 개에게도 당연히 불성이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조주는 “무(無)”라고 대답합니다. 이는 교리에 대한 반박이 아니라, 수행자에게 집착된 분별심을 끊게 하려는 선적 방편(方便)입니다.

 

   즉, 이 일화는 말과 논리를 넘어서는 깨달음을 가르치며, 모든 개념과 고정된 관념을 무너뜨리는 선종의 핵심 방식을 보여 이 짧은 대답이 바로 ‘무자 공안’이다. 불교에서는 일체중생, 곧 모든 생명 있는 존재에게 불성이 있다고 가르친다. 그러므로 개에게도 불성이 있다는 것이 정통 교리다. 그러나 조주 선사는 “없다(無)”고 대답했다.

 

3. 조주의 차(茶) — 일상의 언어로 드러나는 선

 또 다른 유명한 일화는 ‘조주의 차 한 잔’이다. 이는 조주 선사의 일상적인 언어가 어떻게 곧 선의 가르침이 되는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어느 날, 어떤 스님이 조주에게 물었다.

  “막 절에 온 새내기입니다. 부탁드립니다.”
  “차나 한 잔 하고 가게.”

 

  또 다른 스님이 찾아와 말했다.

  “이미 이 절에 머문 지 오래되었습니다.”

  “차나 한 잔 하고 가게.”

 

  이 광경을 지켜보던 절의 주지가 의아하여 물었다.

“스님의 처신이 이상합니다.

 

  왜 누구에게나 똑같이 차 한 잔을 권하십니까?”
조주는 말했다.
  “그대도 차나 한 잔 하게.”

 

이 일화는 차를 권하는 평범한 말 속에 선의 진리를 담은 예시입니다.

조주는 경력이나 자격, 지위에 관계없이 누구에게나 똑같이 ‘차를 권합니다’.

이는 곧 선의 세계에서는 모든 존재가 평등하며, 특정 조건이나 배경에 얽매이지 않고 깨달음에 이를 수 있다는 뜻입니다.

 

또한, 이 말은 다음과 같은 의미로도 해석됩니다:

  • “지금 이 순간을 음미하라.” 깨달음은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차 한 잔 속에도 깃들어 있다.
  • “그만 생각하고 행동으로 옮기라.” 계속 머리로만 궁리하지 말고, 즉시 경험하고 체득하라는 메시지.

조주의 “차 한 잔”은 곧 직관적 실천과 평등한 자각을 나타내는 선의 은유입니다.

 

4. 조주의 나이 80, 수행의 자세

조주 선사는 80세가 넘도록 매일같이 수행에 힘썼다. 어느 날, 어떤 제자가 물었다.“선사께서는 이미 깨달음을 얻으셨는데, 어찌하여 지금도 이렇게 부지런히 수행하십니까?”

조주는 대답했다.

“깨달음을 얻었더라도 그릇을 씻고 밥을 짓고, 할 일은 해야지.”

 

이 일화는 선종의 비초월적·실천적 태도를 보여줍니다. 조주 선사에게 깨달음이란 초자연적인 상태나 도피적인 열반이 아닙니다. 오히려 “지금 여기”에서 밥을 짓고, 일을 하며, 그 속에서 무심히 살아가는 것이 바로 선의 삶입니다.

이 말은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내포합니다:

  • 깨달음은 현실 도피가 아니다. 수행의 끝은 일상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 ‘성인도 밥 먹는다.’ 깨달음이란 특별한 상태가 아니라 무심한 삶 자체다.
  • 진정한 수행은 일상 속 실천이다.

즉, 선종의 이상은 삶과 수행의 일치에 있으며, 조주의 말은 그 대표적인 표현입니다.

 

5. 조주의 120세 생애와 입적

  조주 종심 선사는 무려 120세라는 장수를 누리며 입적하였다. 그의 말년은 산문(禪門)에서 후학을 지도하며 보냈으며, 말기에도 매우 간결하고 단순한 선문답으로 많은 제자들을 깨우쳤다. 그는 형식이나 장식적 언어를 싫어했고, 본질로 곧장 나아가는 가르침을 추구했다.

 

한 제자가 임종 직전의 조주 선사에게 물었다.

“스님, 아직도 무언가 놓지 못한 것이 있으십니까?”

 

조주는 눈을 감고 고요히 대답했다.

“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조주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 생명의 호흡조차 놓을 수 없지 않느냐.”

 

조주의 임종 시 일화는 선종이 생사조차 초월의 대상이 아님을 보여줍니다. 

조주는 죽음을 앞두고도 고요히 웃으며, 죽음 자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입니다.

그의 마지막 말은 다음과 같은 뜻으로 해석됩니다:

  • “생명의 흐름조차도 억지로 놓을 수 있는 게 아니다.”
  • “무엇이든 억지로 통제하거나 초월하려는 마음 자체가 번뇌다.”
  • “생사마저도 무심히 받아들일 수 있는 자유로움.”

이 일화는 선의 궁극적 자유란 생사에도 얽매이지 않는 태도임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6. 맺음말  :  조주 선사의 선은 지금도 살아 있다

 

조주종심 선사의 가르침은 지금도 동아시아 선불교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일본의 임제종, 조동종은 물론, 현대 한국의 선불교 전통에서도 조주의 공안은 주요한 수행의 대상이다. 그는 간결하고 절제된 언어로, 때로는 무정하고 의아하게 들릴지라도, 진리를 가리키는 손가락처럼 선문답을 구사했다.

"무(無)"라는 한 글자, "차나 한 잔 하고 가게"라는 일상의 말, 그리고 "깨달았어도 밥은 해야지"라는 실천적 자세 속에는 인간 존재의 본질과 직면하려는 선사의 깊은 통찰이 담겨 있다. 조주 종심의 가르침은 시대를 초월하여, 오늘날을 사는 우리에게도 ‘지금 이 자리’에서의 깨어있음을 요구한다.

 

 각 일화는 단순한 대화 같지만, 그 속에는 선종 특유의 비논리적 직관, 현재 중심적 사유, 평등한 자각, 실천 강조가 담겨 있습니다. 이 공안들은 단지 이야기로 읽히기보다는, 수행자의 내면을 흔들고, 자아의 틀을 깨뜨리는 도구로 작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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