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말 PREFACE
엄마!
가만히 입 밖으로 되뇌기만 해도 애달프고 푸근하다. 다가가서 살 부 비며 힘겨운 마음을 내려놓고 한 열흘 쉬고 싶다. 정겨워서 눈물이 난다. 우리는 저마다의 ‘엄마’를 만나고 싶다! 현실의 팍팍함을 잠시만이라도 잊고 싶어서.
그런데 나는 내내 풀 수 없는 의문을 하나 달고 살아왔다. 정말 엄마는 그렇게 희생적이고 헌신하는 존재일까? 정말 모든 어머니가 자식에 게 모든 것을 희생하고 끊임없이 더 주려고 하는 사람일까?
서른 살 초입까지 나는 맹목적이리만큼 ‘어머니’라는 이름에 외경심을 느꼈다. ‘어머니’라는 글자만 보아도 콧날이 시큰해졌다. ‘어머니=한 없는 사랑’이라는 등식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은 대단히 경망스럽고 불경스러운 죄를 범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무조건적으로 어머니에 대한 감사에 열중해야 한다고 믿었다.
내 속에 있는 어떤 다른 생각들, 다른 빛깔의 느낌들, 칙칙하고 서글픈, 난감하고 해독되지 않는 어떤 기억(감상)들을 이해할 수 없는 상태로 말이다. 그 발칙하고 손가락질 받을만한 치기어린 의문이 행여 밖으로 새어나올까 봐 내 입을, 내 숨결을, 내 가슴을 틀어막고 살아온 날들이었 는지도 모른다.
그 큰 사랑에 의문을 품는 것은 어쩌면 이 사회의 금기를 건드리는 것은 아닐까? 불우했던 개인의 성장기를 까발리면서 성숙하지 못한 자 신의 자화상을 만천하에 공개하는 어리석은 짓은 아닐까?
마흔이 넘어 내 아이를 낳고부터 나는 실은 어머니가 그토록 희생적 이고, 자신의 것을 끝도 없이 내주고, 자식의 허물을 온몸으로 감춰주는 사람인가에 대해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었다. 아이를 키우면서 내 아이 보다 내가 더 중요했던 순간들이 많았고, 나의 어떤 것을 포기해야 할 때 느끼는 절망감이 너무나 컸다. 종종 내 아이에 대해 사랑의 감정보다 무 거운 짐처럼 느꼈던 기분을 어떻게 해야 할까?
이제야 나는 알게 됐다. 성장기 동안 적절한 사랑을 받지 못하고 살 아온 사람이 자식을 사랑으로 양육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를. 그래서 나는 세상 모든 어머니와 아버지를 헌신과 희생이라는 신성한 이름안에 모셔두는 것만이 능사는 아닐 거라고 감히 생각했다. 그렇지 않으면 나의 이 황폐하고 아픈 내면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내면이 불모의 오지처럼 벌거숭이인 채 매순간 피 흘리고 있는 건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도대체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 걸까? 나는 손가락질을 받더라도, 어른이 되지 못했다고 핀잔을 받더라도 세상 어머니들에 대해, 세상 부모들에 대해 이렇게 결론을 내린다.
세상 모든 어머니가 다 희생적이고 고귀하고 헌신적인 것은 아니고, 세상 모든 어머니가 다 쉬고 싶은 푸근한 고향이나 기대고 싶은 너른 품 은 아니며, 세상 모든 부모가 다 자식에게 주고주고 더 주려고 하는 것은 아니다. 물론 본능적으로 그럴 수는 있다. 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자식에 게 어떤 방식으로 사랑을 주어야 할지 몰라서 상처를 주기도 하고, 어떤 경우는 희생과 헌신과는 거리가 있는 부모도 있고, 어떤 경우는 자식에 게 상처를 주고도 개의치 않는 경우도 있다. 오히려 키워주었으니 그에 값할만한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바라고, 미치지 못하면 성내고 등 돌리는 어머니도 있다. 또 자신의 상처 때문에 자식에게 필요한 사랑을 주지 못하는 어머니도 있다고.
노인이 되었으나 여전히 미성숙한 부모도 있고, 자식에게 저지른 과 오를 모르는 채 오히려 자식을 탓하며 사는 부모도 있다. 더러는 솔직히 자기 욕심을 앞세우는 부모도 있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그건 어머니 역시 자기 부모와 주변 환경의 영향을 받으면서 성장했고 완전하지 못 하기 때문이다.
나는 자기도 모르게 자녀에게 저지른 실수와 잘못을 평생 깨닫지 못 하고 끝나는 경우에 대해 말하고 싶었다. 우리는 지금 별 생각 없이 지지고 볶으며 살면서 부지불식중에 자식에게 상처를 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런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인간은 누구나 완전하지 않다. 어머니도 예외일 수는 없다. 나의 양 육방식이 훗날 내 아이에게 고통의 기억으로만 남는다면? 내가 하는 사랑의 방식이 너무도 엄격하고 냉혹한 것이어서 어른이 된 아이가 세상 에서 버틸 에너지가 없어 매순간 혹독한 대가를 치르며 살고 있다면? 혹은 내가 아이에게 주는 사랑이 너무 과한 것이어서 아이가 독불장군에 오만하고 나약하고 의지가 없는 성품이라면? 내가 하는 사랑의 방법이 지나친 집착이 된다면? 보상받고자 하는 내 욕심이 앞서서 자녀의 목을 시시때때로 조르는 결과가 된다면 어떨까?
어머니의 자리는 참으로 위대하다. 헌신하고 희생하는 자리임에 틀 림없다. 하지만 나는 모든 어머니가 그런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위대 하고 헌신적인 사랑으로 자녀를 양육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공부하고, 그야말로 도를 닦는 심정으로 자신의 마음 밭을 갈고 닦는 일을 쉬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머니인 내가 품이 크고 좋은 사람이 되어야 내 아이가 그런 멋진 사람으로 성장한다. 그렇게 좋은 품성으로 행복한 아이를 길러낸 어머 니들이야말로 위대하고 아름다운 모성으로 존경받을 수 있다. 그런 사 람들이 많아질 때 더 좋은 사회가 될 것이다.
큰 눈과 큰 생각, 큰 가슴으로 멀리, 널리 그리고 때론 자세히 앞과 뒤 와 옆을 두루두루 살피고, 나의 아이와 다른 아이를 함께 생각하고, 이 기적인 욕심으로 내 아이에게 부와 명예를 안겨주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무수한 시간들을 좀 더 성찰하는 시간으로 채우기를 바라는 것이다.
물론 나는 이제 장성하고 어른이 되어 성공한, 그래서 힘과 권력이 역전된 자녀들이 늙고 힘없는 부모에게 효도를 다해야 한다는 것을 강 조하고 싶다. 다만 내가 경계하는 것은 우리 모두는 자식이며 부모라는 관점에서 봤을 때 자녀로서 부모의 잘못된 양육방식으로 상처를 입고 고생스럽게 살고 있다면 냉정하게 원인을 찾아 치유할 수 있다는 것이다.
누구를 탓하자는 것이 아니다. 불완전한 인간인 우리가 후대에게 같 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무조건적으로 부모를 이상화하거 나 칭송에만 열중하는 것은 또 다른 과오를 범하는 것이다. 그건 사회 전 체적으로도 불행이라고 생각한다. 또 무조건적인 효를 강조하며 무력한 아이였던 어린 날의 고통을 덮 어두는 분위기로 몰고 간다고 해서 사람들이 효도를 하는 것도 아니라 는 생각이다.
부모가 잘 몰라서 자녀에게 저지른 잘못에 대해 “네가 그 렇게 많이 상처를 받고 괴로웠구나. 미안하다. 엄마 아빠는 그 사실을 몰 랐단다. 정말 너 많이 슬펐겠구나.” 하고 다독여주면 우리 안의 상처는 치유된다. 굳이 부모의 ‘도움’을 받지 않더라도 자식이 ‘이 사실’을 알게 되는 순간 이미 치유는 시작된다. 그리고 상처를 딛고 건강한 어른으로서 다음 세대에 건강한 정신과 사랑을 물려줄 수 있다. 그래서 일방통행식으로 젊은 세대를 꾸짖고 부모를 ‘절대 선’의 자리에 모셔두는 것은 문제라고 생각한다.
나는 부모와 자녀가 진심으로 악수하고 화해하기를 바란다. 건강한 우리가 되었으면 한다. 그리고 인간은 평생 성장하는 것이라고 생각한 다. 다시 말해 평생 배우고 변화하고 점검해야 한다. 나이 많은 것이 면 죄부가 되는 것도 아니고, 더 이상 ‘성장’을 위한 몸부림과 노력을 멈추 어서도 안 된다. 서른 살, 마흔 살, 쉰 살…… 나이가 들수록 예전에 배운, 혹은 이미 형성된 낡은 것들과 끊임없이 결별하려는 용기를 가지고 삶 과 마주해야 한다. 오래된 것의 미덕은 축적된 경험을 통해 끊임없이 개 안하려는 노력에 있다.
고여 있거나 정체되어 있거나 굳어 있는 것이 아니라 갱신하려는 마음이 있을 때 혜안이 생긴다. 세 살, 네 살, 10대, 20대 자녀에게 가르치려고 하기보다 지금 내가 주장하는 바에 대해 의심해보 자. 정말 내 생각이 자녀에게 가치 있는 것일까? 다음 세대의 주인이 될 자녀에게 이로운 것일까? 의문을 품어보자고 말하고 싶다. 이전 세대는 어쩔 수 없다면 지금 자녀를 키우고 있는 젊은 세대만이라도 변해보자 는 것이다. 그렇다. 이 글의 초점은 이제 부모가 된 나와 나중에 부모가 될 우리의 자녀다. 인간은 완벽할 수는 없지만 변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부모라 고 만능이 아니고, 무조건 옳은 것도 아니다. 행복한 사람들을 길러내기 위해 부모인 우리가 변하자! 이 책은 간략하게 말하면 마흔세 살에 딸을 낳아 키우는 초보엄마의 시행착오에 대한 이야기다. 책에서는 자랑하고 내세울 것보다 해서는 안 되는 것들에 대해 많이 말하고 있다. 육아를 계기로 저자인 나의 성장기 를 되돌아보면서 아이와 함께 엄마가 성장해가는 과정을 기록하고 있다.
이 책의 내용은 총 3부와 프롤로그, 에필로그로 구성되어 있다.
1부는 서른여덟 살에 결혼해서 두 차례 유산 후 ‘아기를 포기할까 어 떻게 할까?’ 하는 망설임에서 시작된다. 이미 두 차례 유산을 했고, 자궁 내에 7~8센티미터가 넘는 근종이 7~8개 이상 소복하게 들어 있을뿐 더러 십수 년 전 한쪽 유방을 전부 들어내는 수술을 받는 등 당시 나의 몸 상태는 최악이었다. 게다가 이미 마흔이었다. 고심 끝에 ‘그래도’ 아 기를 낳아야겠다고 결심하고 ‘건강한 몸 만들기 프로젝트’에 돌입한 후 하루 일과에 대해 유연하고 재미있게 기술하고 있다. 그리고 마침내 임 신을 했다! 아주 좋은 위치에 단단히 착상된 나의 임신상태에 의사는 기 절할 뻔했다고 술회하기도 했다.
2부는 진통을 시작한 지 4시간 만에 자연분만으로 3.9킬로그램의 건강한 아기를 낳은 이야기로 출발한다. 2부는 본격적인 나의 ‘고난기’다. 갓 백일 지난 아기를 처음 보는 이웃에게 맡기면서 아이에게 탈이 나기 시작했다.
자주 아팠고, 유모차에서 떨어져 수술까지 했다. 아기는 눈에 띄게 불안해 했으며 사람들을 보면 무서워서 엉금엉금 기어 어디론가 숨어들기 바빴다. 스스로를 자해했고 말이 퇴행했다. 더 이상 몸무게가 늘지 않았으며 겁을 먹고 얼어붙어버렸다. 아기를 맡아줄 마땅한 사람을 찾기 위해 ‘아기를 키워줄 사람을 찾는다’는 광고를 아파트 단지 내에 수도 없이 붙였다.
그러다가 나는 결심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내가 아기를 키우자. 일에 대한 열정으로 불타던 나는 마침내 직장을 그만두고 육아에 전념한다. 그러면서 나는 뭔지 모르게 참으로 슬픈 상황들에 직면하게 된다.
2부에서는 아이를 키우면서 내가 몰라서 지나쳐온 것들에 대해, 또 피곤한 하루하루의 경험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3부에서는 내 안의 상처가 아기에게 좋은 엄마의 역할을 막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면서 어린 시절의 경험에 대해 솔직히 풀어놓는다.
부끄러운 고백이 되겠지만, 비슷한 성장기를 겪은 사람들에게는 약이 되리라! 어른이 된 나에게도 성장하지 못한 내면의 아이가 존재하고, 내가 나를 잘 보듬고 사랑해서 상처를 치유했을 때 괜찮은 부모의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결론을 얻게 되었다.
흔히 결혼하면 아이를 낳아 키우는 것이 자연스럽고 쉬운 일상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끊임없이 노력해야 좋은 부모가 될 수 있 다는 나의 깨우침이 곳곳에 녹아 있다.
에필로그에서는 내 안에서 울고 있는 상처받은 나를 만나는 과정을 담고 있다. 육아가 왜 이리도 힘이 드는지, 사는 것이 왜 이리도 고되고 막막한지, 사소한 일에 왜 이리도 상처를 잘 받는지, 왜 이리도 일벌레처 럼 일에 매달리는지, 왜 내 아이가 예쁘기보다 야단치고 화내는 데 급급 한지, 왜 칭찬의 말에 인색한지, 혹은 왜 이리도 과도한 칭찬을 달고 사 는지…… 왜? 왜? 왜?
그랬다. 내 안의 상처 때문이었다! 내 안에서 아직도 울고 있는 성장 하지 못한 아이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이 이야기는 한 인간이 아기를 낳아 기르면서 변화하려고 노력하고, 아픔을 치유해가는 과정을 담고 있다. 그리고 ‘좋은 부모’가 되려는 지난한 몸부림의 흔적이 녹아 있다. 한 사람의 불완전한 인간이 아이를 낳아 부모가 된 이후 성장하는 과정이 담겨 있다.
이 글은 나 개인의 육아 경험이지만, 각각 독립된 장으로 이루어진 산문 형식이어서 한 부분만 읽어도 그 부분이 담고 있는 메시지를 얻을 수 있다. 또 개인의 이야기에 국한되어 있지 않고 보편적으로 공감을 얻 을 수 있기에 ‘괜찮은’ 육아서의 역할을 하리라고 본다. 초보맘들이 알아 두어야 할, 놓치기 쉬운 육아의 일상을 담고 있다.
어쩌면 당신은 가슴이 찡한 여운 때문에 자신의 어린 시절을 돌아보 게 될지도 모른다. 살아오면서 경험한 힘겹고 화나고 억울했던 사건들 을 떠올릴지도 모른다. 그리고 어쩌면 아물지 않은 상처들과 대면하게 될 수도 있으리라. 상처를 극복하고 한 단계 성장한 삶을 위한 어떤 노력 을 시작할 수도 있으리라!
당신은 자녀와 놀아주는 것이 대단히 힘들지는 않은가? 살아 있는 것이,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 행복한가? 혼자 있기를 좋아하는 가? 우울한 성향인가? 당신은 한 인간으로서 성숙한 사람이라고 생각하 는가? 가슴 설레는 꿈이 있는가? 육아가 ‘너무’ 힘이 들지는 않는가? 그 렇다면 이 책을 읽길 권한다.
북코리아 이찬규 사장님과 편집부에 감사드린다. 염태웅 수원시장님 과 장보웅 팀장님, 수원문화재단에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나의 남편과 딸 지민이에게도 사랑과 감사를 전한다. 그리고 살아 있음을, 지금 여기 에 존재함을 감사한다.
하느님에게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