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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발로 걷기

by 오, 자네 왔는가 2025. 5.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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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물에 상추를 씻는다

꼬깃꼬깃 접혀 있던 몸 활짝 기지개를 켠 듯

상춧잎 울퉁불퉁한 잎면에 내 마음의 물기가 주르르 흐른다

-이나명<상추에 관한 명상>중

 

맨발로 걷기

 

  몇 년 전 만해도 혼자 맨발로 산길을 걷다보면 의아해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발 아프지 않아요? 가시에 찔리면 어쩔려구”

나의 표정을 유심히 살피면서 내 상태를 슬쩍 점검해보는 점잖은 분들을 자주 만났다.

 

  “이렇게 맨발로 걸으면 혈액순환도 잘되고 건강이 아주 좋아져요”

나는 씩 웃어 보인다. 더러는 ‘그래요?’하고 지나가기도 하지만 여전히 미심쩍고 우려스러운 얼굴로 지나치는 사람들도 있다. 뭐라 말은 하지 않지만 이상한 사람을 보듯 흘끔 흘끔 보는 이도 있었다.

 

  당시 나는 맨발로 산길을 걷는 것이 구체적으로 신체에 어떤 효과가 있고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서는 잘 몰랐다. 다만 산길을 걷다보니 그 향그러운 황토색 흙을 맨발로 걷고 싶다는 충동을 참을 수 없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온 몸에서 ‘와 좋아’ ‘ 좋아’ 아우성치는 느낌, 그리고 무수히 많은 행복한 느낌표들! 세포 하나하나가 저마다 꿈틀꿈틀 깨어 일어나고, 삶에 생기를 불어 넣어주는 묘한 경험을 한 것이다.

 

  몸이 개운해지고 뭔지 모를 열정같은 것이 솟구쳐 올랐다. 그 느낌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지금도 적당한 단어가 떠오르지 않는다. 항상 찌뿌둥하고 나른하던 날들의 온갖 먼지와 허물을 벗어버린, 과장을 하면 하늘을 날 듯한 상쾌함이라고나 할까? 하지만 맨발로 걷기를 하고부터 이 같은 정신의 상승작용 외에도 확실히 건강이 좋아졌다. 몸이 가벼워지면서 피로함을 느낄 수 없게 된 것이다. 푸석했던 얼굴에 살이 오르기 시작했다.

 

  다이어트를 원하는 사람들이라면 몸무게가 느는 걸 손사래 치며 마다할 수도 있으리라!

그러나 나는 너무 마른 탓인지 항상 내 나이보다 다섯 살 이상 많게 본다. 정말 속상하고 억울하다. 지금이나 그때나 나의 소망은 ‘체중 증가’다.

아무튼 건강해지고 싶다는 바람으로 매일 왕복 2시간 가량 산에 올라갔다.

 

  그리고 그 여름의 푸르른 녹음과 가을 산의 흐드러진 열정과 옷을 벗은 나무들이 쓸쓸하던 겨울, 봄의 수줍고 어여쁜 바람에게, 연한 새싹의 속살거림에게 더 가까이 교감하고 싶었다. 그런데 자연의 품안에 나를 들여놓고 지친마음과 몸의 찌꺼기와 때 국물을 내려놓자 놀라운 일이 벌어진 것이다.

 

 요즘은 맨발로 걷기에 대한 효능 효과가 널리 알려져 있다. 지은 지 5년 이내의 웬만한 아파트라면 단지내부에 지압 용 자갈길이 있을 정도고 산길을 맨발로 걷는다고 해서 이상한 사람취급하지는 않는다. 그뿐인가? 인터넷을 비롯해 각종 서적에서 맨발로 걷기의 효능에 대해 전문가 집단이 적극적으로 인정하고 있다.

 

  맨발로 걸으면 우선 혈액순환이 원활해지고 면역력이 강화되고 배변활동이 좋아져 변비 가 사라지고 콜레스테롤 수치도 낮아져 고혈압도 사리지고 성기능도 좋아지고 심지어 무좀도 깨끗이 낫고...... 등등등. 쾌변 쾌면 두통 감기예방 장기능 원활, 피부, 비만, 골다공증 간기능 개선 등등 실로 만병통치의 효능을 가지고 있다고 하지 않는가?

 

  여기에 내 경험을 덧붙이자면 습관성 유산이나 불임으로 고민하는 사람들에게도 맨발로 걷는 운동은 더없이 좋다는 생각이다. 물론 주의사항도 있다. 당뇨나 관절염이 있는 사람은 주의해야하고 발이 가시에 찔리거나 다칠 경우를 대비해야 한다.

 

  여름부터 시작된 맨발걷기는 늦가을까지 계속됐다. 겨울이 되면서 어쩔 수 없이 신발을 신었다.

이듬해 봄이 왔을 때 나는 가장 먼저 신발을 벗어던졌다. 진달래와 개나리가 피고 이름 모를 풀과 꽃들의 향연 안으로 한발 한발 걷다보면 그 산 길 위의 모든 것들에게 절로 감사하는 마음이 생긴다.

 

  살아 있음이, 이렇게 아름답고 평화로운 곳에 나의 영혼을 데려와서 조용히 바라볼 수 있음이, 감사하고, 죄스러워서... 어쩐지 이름 없는 풀들과 새들과 물 소리, 그 환한 세상에 때 묻은 육신이 침입자 같아 보여서 , 인간이라는 사실만으로 공연한 슬픔 같은 것이 뭉클뭉클 피어올랐다.

 

   맑고 투명한 자연의 신비 앞에 인간의 한없는 나약함과 슬픔을 보태는 것 같아서 나도 모르게 자꾸자꾸 중얼거렸다.

  미안해. 정말 미안해.

허약한 육신을 데리고 너희의 세상에 슬쩍 무입승차 하려고 해서 미안해. 하지만 나 지금까지 욕심 없이 살았어. 다른 사람들 아프게 하지 않으려 애쓰면서 내 속으로 화를 잔뜩 모아놓고 혼자 앓으면서 살았어. 그래서 몸이 많이 안 좋은가봐.

 

  짐짝 같은 몸뚱이를 눈부신 봄의 햇살과 겨울을 막 견뎌낸 푸르름 앞에 내려놓고, 울퉁불퉁 못생긴 맨발을 보면 어느새 뜨거운 눈물이 흘렀다.

  그렇게 다시 찾아 온 봄과 함께 나의 맨발로 걷기도 다시 시작된 것이다. 그 즈음 나는 임신에 대한 미련은 버린 상태였다. 맨발로 걸으면서 얻는 환희와 행복감만으로도 충분했으니까. 더 이상 무언가를 욕심 내는 것이 불필요하게 느껴지던 날들이었다. 그리고 이제 가뿐해진 몸으로 다시 직장을 나가려 했다.

 

  아! 그런데 그 봄에, 마흔 두 살에 임신을 한 것이다. 물론 임신이 된 것으로 만사가 해결 된 것은 아니었다.

나는 이미 유산을 두 차례나 경험했기 때문에 임신의 유지가 더 어려운 과제였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이번엔 걱정되지 않았다 유산에 대한 두려움이 전혀 들지 않았다. 나는 믿는 구석이 있지 않는가?

 

  요즘은 맨발걷기를 못하고 있다.

이사를 했고 내가 사는 동네에도 야트막한 산은 있지만 아무도 산에 오르는 사람이 없다보니 혼자서 인적이 없는 산에 가기가 쉽지 않아서다.

 

 그 때문인지 몸의 여러 기관과 장기 여기저기서 이상 신호를 보내온다. 곧 이사를 가리라

아무튼 당시 나는 매일매일 흥분된 마음으로 산길을 걸었다. 그 길에서 나처럼 산을 찾는 이들을 만났고 눈인사를 나누기도 했다. 숲에 사는 새들의 지저귐이 얼마나 명증한지 그 때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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