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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려 놓 음

by 오, 자네 왔는가 2025. 5.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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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꿈이 깨어지면 또 하나의 또 다른 꿈이 피어난다.

물은 어느 그릇에나 담겨질 수 있듯이 우리 삶도 그런 것,

다만 순간을 놓치지 않고 사랑하며 살고 싶다.

-홍신자 <자유를 위한 변명>

 

 

내 려 놓 음

  결혼 후, 아이가 생기지 않아 길게는 10년, 짧게는 5년 이상 병원이란 병원은 모두 순례하면서 돈은 돈대로 들고 기력도 탈진해서 ‘더 이상은 못 하겠다’고 ‘항복’한 이후에 거짓말 처럼 임신을 한 사람들을 종종 보게 된다.

 

  아는 사람 가운데 유명한 병원뿐 아니라 온갖 비방(秘方)을 두루 섭렵하는 등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시도해보았지만 7년째 임신이 되지 않자 아기를 포기한 이가 있다. 30대 중반인 그녀는 대신 ‘자유롭고 편하게’ 하고 싶은 거 하고 즐기면서 살기로 했다. 남편과 여행도 다니고 그럭저럭 아이에 대해 잊고 있었는데 1년 만에 덜컥 임신이 되었다고 했다.

 

  나는 그녀와는 좀 달랐지만 ‘안되는 걸 어쩌겠어. 지금 이대로도 좋아. 운동하니까 몸이 날아갈 듯하네. 이걸로 충분해’ 라고 생각하다 보니 임신이 되었다.

  부부 모두 별다른 문제가 없는데 백방으로 노력해도 안 되는 경우에는 ‘아이가 없으면 어때? ’하는 배짱으로 편하게 마음먹는 것이 오히려 임신에 도움이 되는 듯하다. 즉 ‘마음을 비우는 여유’가 필요한 것 같다.

 

  그런데 아기를 눈이 빠지게 기다리면서 임신에 유효하다면 별의별짓을 다하는 부부에게 포기가 쉽겠는가? 주위 시선도 있고 일가친척들의 성화도 그렇고 무엇보다 결혼한 부부에게 아이가 없는 것을 아직은 비정상적으로 보는 것이 어면한 현실아닌가?

 

  요즘은 아이 없이 사는 부부가 늘고 있다고는 하지만 일부를 제외하면 결혼하면 자손을 생산하는 것이 동서고금의 순리 아닌가? 그러니 아기를 포기하는 것이 힘들긴 할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해도 안 된다고 느꼈을 때 이제 그만하자, 하며 마음을 바꾸게 된다.

 

  그런데, 이렇게 마음을 고쳐먹고 나면 아이를 갖게 되는 경우가 왕왕 있다. 아이에 대한 미련을 떨쳐버리고 나니 아이를 갖게 되는 것은 역설적이지만 무언가에 연연하고 스트레스 받고 긴장하며 살아가는 것 자체가 임신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세상만사 인생살이가 다 내 뜻대로 된다면 좋겠지만 그게 쉬운 일인가? 인력으로 어쩔 수 없는 것은 포기하는 것도 용기라는 생각이 든다.

 

  포기하고 나면 더 큰 것이 종종 돌아온다. 마음의 평정, 겸손함, 뒤돌아보는 여유, 너그러움 그리고 내 주변과 이웃을 둘러보는 마음, 등등. 그래 자식이 없으면 어때? 별거 아닌 인생, 왜 꼭 자식이 있어야하지?, 하고 생각해 보자.

요즘은 처음부터 아이를 원하지 않는 젊은 부부도 있지 않은가. 그들을 옹호하는 것은 아니지만 고달픈 인생살이를 왜 굳이 자식에게까지 물려주려하는가?

 

  누군가에겐 인생이 만만하고 즐겁고, 세상이 살만 한 곳이긴 하지만 또 다른 이들에게 인생이란 참 고달프지 않는가?

굳이 내 핏줄을 가지려고 연연하지 않고도 또 다른 의미 있는 삶이 있지 않을까? 자녀를 간절히 원하지만 아무리 해도 안 된다면 그냥 두 사람이 행복하게 잘 사는 길을 모색하시길 바란다. 자식은 애물단지라고 하지 않는가? 이 말은 내가 아이를 낳아 길러보니 정말이지 절감하는 경구가 되었다.

 

  별별 짓을 다해도 안 되는 건 안 되더라는 것이 지금까지 내가 살아온 길지 않은 삶에서 얻은 교훈이다. 누가 아는가? 자유롭게 내적으로 충실한 삶을 살다 보면 진심으로 원하는 것을 얻을 수도 있을지 말이다.

 

  그렇다고 “포기하면 아이가 생길거야.” 하는 헛된 소망은 품지 마시길 바란다. 그저 인생에서 단념할 부분은 단념하고 취할 부분은 취하면서 지혜롭게 사는 것 , 그리고 공동체 구성원으로서의 자신에게 관심과 애정을 품고 좋아하는 것을 경험하며 열심히 살아가는 것도 좋지 않은가?

 

  소중하고 가치 있는 어떤 배품이나 나눔이나 봉사나 그 무엇이든 실은 자기만족과 자기애의 한 방편일 것이다.

정말로 아이를 키우고 싶다면 입양같은 고귀한 결정도 할 수 있으리라. 나는 입양은 인간정신의 숭고함의 절정이 아닐까 감히 생각한다.

 

  원하는 것을 향해 미친듯이 내달리는 것도 나름의 가치가 있겠지만 때로 앞 만보고 너무 정신없이 달려가다가 낭패를 겪기도 한다. 그래서 오히려 중요한 것을 잃는 수도 있다. 무언가를 얻기 위해 물불 안 가리고 달려가는 것은 20대 청춘의 한 시절의 무모한 열정만으로 족하지 않을까?

 

  서른이 되고 마흔이 되면 잠깐씩이라도 안으로 침잠해서 고요해지는 시간이 필요한 것같다. 자신에게 손 내밀어 보는 마음 말이다.

  지금 세상이 너무 마구 달려가고 있어 좀 어지럽지 않은가? 갈수록 세상이 너무나 피도 눈물도 없이 내달리고 있어서 참으로 걱정스럽다. 1930년 대공황에 비견되는 미국 발 세계적인 경제위기도 그렇고 삶이 너무도 비상식적으로 빙판길을 내달리고 있어서 우리 모두, 인류가 다함께 어떤 나락으로 곤두박질 치는 것이 아닐까 걱정하게 된다.

 

  잠시라도 조용히 관조하면서 마음을 쉬게 하는 삶이 소중하다는 생각이 든다. 때론 포기도 하고 손해도 보고 바보같지만 우리 모두 다 같이 그렇게 한 템포 늦추어서 사는 소박한 삶이 그립다.

 

  안되는 건 그만두자! 성공한 사람들은 ‘절대 포기하지 말라’고 하는데 나는 포기할 건 포기하는 것이 진정 용기있는 삶의 태도라고 생각한다.

 인구 감소를 걱정하는 사람도 많지만 낳을 수 있는 사람들이 많이 낳도록 정책적으로 뒷받침 해주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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