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와 조선 시대 왕과 고위 신하들의 관복이 **빨간색(홍색)**인 이유는 단지 미적인 취향이 아니라, 중국 중심의 사대주의적 질서와 정치적 상징성에 근거한 매우 전략적인 선택이었습니다. 이를 이해하려면 유교적 세계질서, 명나라와의 관계, 복식 제도의 상징성 등을 종합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 1. 관복 색상의 상징성과 위계 질서
중국과 조선에서는 의복 색이 단순한 색상이 아니라 계급과 질서를 상징하는 정치적 코드였습니다. 이는 유교적 ‘예(禮)’의 실천이자 계급사회 유지 장치였죠.
색상의미사용 주체
황색 (노랑) | 천자의 색 (우주의 중심, 황제) | 오직 중국 황제 (명·청 등)만 사용 가능 |
자주색·자색 | 부황제급·왕의 색 | 중국 제후국 왕 등 제한적 사용 |
홍색 (빨강) | 고위 관료의 색, 통치 권위 상징 | 조선 국왕, 고위 신하 |
청색·녹색 | 중하위 관료, 문무백관 | 일반 관리, 평민 구분 |
흑색 | 상(喪) 또는 형벌 복색 | 천민, 죄인 등 |
🏯 2. 고려·조선의 ‘사대주의’와 관복 색의 한계
▶️ 중국 중심 질서(천하관)
- 조선은 명나라의 冊封체제(책봉체제)에 편입되었고, 이는 중국 황제가 조선 국왕을 공식적으로 왕으로 인정하는 제도입니다.
- 이 체제 하에서는 황제만 황색(노란색) 복식을 사용할 수 있으며, 조선 국왕은 이에 도전할 수 없었습니다.
- 조선 왕은 ‘왕(王)’이지 ‘황제(皇帝)’가 아니었기 때문에 황색 사용은 금지되었고, 명나라로부터 하사받은 제복 규정에 따랐습니다.
▶️ 명나라 예복 체계의 수용
- 조선은 명나라로부터 관복 제도와 색상 체계를 전수받아 자국의 복식제도를 정비했습니다.
- 예를 들어, 조선 태종 시기에는 명나라 예복 형식을 정식으로 받아들였고, 홍색은 중앙 고위직이 입는 관복 색으로 고정되었습니다.
- 조선 국왕은 명나라 황제의 체면을 고려해 **홍색 곤룡포(곤복)**를 입었으며, 황색 곤룡포는 감히 사용할 수 없었습니다.
📜 3. 조선의 사례: 곤룡포와 관복 색
▶️ 왕의 곤룡포(홍색)
- 조선의 국왕은 공식 석상에서 홍색 곤룡포를 입었습니다. 이는 곧 명 황제에 대한 충성의 표시이자 왕권의 위엄을 지키는 선이었습니다.
- 왕이 황색을 입지 않고 빨간색을 입은 것은 **‘나는 황제가 아니며, 중국 황제를 섬기는 제후다’**라는 외교적 메시지를 내포하고 있었습니다.
▶️ 신하들의 품계별 복색
- 고위 문무관도 홍색 계통의 관복을 입었고, 품계가 낮을수록 청색·녹색·흑색 등으로 색상이 내려갔습니다.
- 이 복색 규정은 명나라 제도를 그대로 본뜬 것으로, 조선의 자율성이 아닌 명나라의 권위에 대한 복종 체계의 일환이었습니다.
🎭 4. 결론: 빨간색은 '절제된 권위의 상징'
고려와 조선에서 왕과 고위 신하들이 빨간색(홍색) 관복을 입은 이유는 다음과 같은 사대주의적 국제 질서 속에서 결정된 것입니다:
- 황색은 오직 천자(중국 황제)만이 사용할 수 있는 신성불가침의 색
- 조선 국왕은 제후국 왕으로서 ‘홍색’으로 절제된 권위를 표현
- 중국 명나라로부터 하사받은 예복 체계를 충실히 따름으로써 ‘예’를 지키는 정통 유교국가 이미지 강화
- 관복 색의 위계는 유교적 질서와 명분, 국제 관계를 동시에 반영한 제도
🧭 추가 설명: 청나라 때는 어땠을까?
- 조선은 명나라가 멸망한 후에도 청나라 황제를 정통으로 인정하지 않고, 계속 명나라 복식 체계 유지했습니다. 이를 **‘小中華(소중화) 의식’**이라고 합니다.
- 심지어 청나라 황제의 복식과는 차별화된 명나라 방식의 홍색 관복을 지속해서 사용함으로써 조선은 문화적 자주성을 강조하려 했습니다.